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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새서휘 작성일26-07-26 17:17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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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기원
제리 브로턴 지음
박세연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세계 지도를 보면서 ‘북쪽’이 왜 상단에 위치하는지 따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동서남북의 4대 방위를 사계절이나 중력의 법칙처럼 자연에 존재하는 절대적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마도 신간 『지리의 기원』을 읽은 후에는 그런 습관을 되돌아보게 될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공 모양의 지구에는 ‘위’도, ‘아래’도, ‘동쪽’이나 ‘북쪽’도 있을 수 없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터인데, 도대체 세계 지도 속 동서남북의 위치는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스튜어트 매카서가 만든 ‘매카서의 세계 보정 지도’(1979). 호주 대륙이 지도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진 알에이치코리아]
‘지도사(地圖史)’ 전문가인 저자 제리 브로턴 영국 런던 퀸메리대 교수에 따르면, 당연하고 절대적으로 보이는 동서남북이라는 네 기본 방위는 사실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주관적인 체계다. 그것은 태초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 언어 및 문화에 따라 변했다. 세계 지도에서 북쪽이 꼭 위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으며, 남쪽도 얼마든지 위에 놓을 수 있다. 문명이 걸어온 방위의 역사를 통관할 때, 절대적으로 고정된 방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컨대 중세 기독교 지도는 에덴동산과 예루살렘이 있는 동쪽을 지도의 맨 위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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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태양 숭배부터 아브라함계 종교에 이르기까지 동쪽은 ‘창조의 기원’이자 ‘빛의 방향’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초기 이슬람 문명은 남쪽을 기준 방위로 삼았다.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방향인 ‘키블라’가 남쪽과 동의어로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이슬람 세계 지도는 남쪽을 위로 놓고 제작되었다. 조로아스터교 역시 남쪽을 주요 방위로 우선시했다고 한다.
북쪽이 지도의 상단을 차지한 경우는 기원전 3세기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 전통에서부터 발견되지만, 오늘날 전 세계가 공유하는 ‘북쪽=위, 남쪽=아래’의 공식이 성립되는 것은 대항해시대 이후라고 한다. 유럽 항해사들이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활용하면서 북쪽이 지도의 상단을 고정적으로 차지하는 시대가 열렸고 유럽 열강들의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식민화 경쟁 속에 그 흐름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지형을 다루는 일반적인 지리학 도서와 궤를 달리한다. 언어학·종교학·천문학·지정학·문학·철학·예술·뇌과학 등을 전방위로 넘나들며 네 방위에 얽힌 역사를 다채롭게 펼쳐 보이는 ‘동서남북의 문명사’라 할 수 있다.
네 방위 중 마지막에 서술한 서쪽은 고대 종교에서 기본 방위로 선택된 적은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서 해 뜨는 동쪽의 반대라는 .이 어둠과 끝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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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탐험 이후 서쪽의 이미지는 완전히 뒤바뀐다. 유럽에서 볼 때 대서양 건너 서쪽에 위치한 아메리카 대륙은 새로운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당시 콜럼버스의 수석 항해사 출신이 그린 해도가 전해지는데 서쪽을 상단에 배치한 매우 보기 드문 세계 지도라고 한다.
유럽의 시각에서 본 서쪽의 발견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서유럽과 북미 지역을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함께 묶는 ‘서구(the West)’라는 개념의 정립으로 이어진다. 네 기본 방위가 길을 찾는 도구로서의 기능보다 지정학적 의미가 더 중요해지게 된 것이다. 서구는 지도의 위쪽에 배치된 북반구(유럽, 북미)와 겹치면서 무의식적으로 ‘중심, 우월, 선진’의 정체성을 획득해 갔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수많은 ‘비(非)서구’ 국가가 19~20세기 최대의 목표로 삼았던 근대화의 다른 이름이 ‘서구화’였다. 하지만 저자는 서구 열강이 지배하는 북쪽을 위로 둔 세계관에 더 이상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저자는 나침반의 네 방향을 하나씩 살펴보며 그 역사적·문화적 함의를 꼼꼼하게 분석하는데, 그 서술 방식이 다소 산만해 보인다. 네 방위의 위치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는 저자의 관。이 서술 방식에도 투영된 탓인 듯하다. 네 방위 전체를 꿰뚫는 하나의 필연적인 이야기를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내려놓고 책을 읽어가다 보면 곳곳에서 뜻밖의 흥미진진한 교양과 통찰을 풍성하게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서남북을 소재로 우리 인식의 한계를 깨우는 책이다.
배영대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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