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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서 서. 운영하던 리처드 부스
쇠퇴해 가던 고향땅 헤이온와이에
전 세계 헌책 사들이며 유통 물꼬
헌책방 늘어나며 ‘헌책마을’ 형성
세계 책 축제 ‘헤이페스티벌’ 열어
콜롬비아 등 세계 각국 확장 개최
강연·하이킹 체험 등 프로그램도
매년 15만명 방문 경제 효과 톡톡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찰나 같은 30년의 전성기를 보냈던 우리나라 곳곳의 헌책방들. 그러나 지금은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발돋움했던 책방 거리도,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나서 새 숨을 불어 넣으려 했던 수도권의 헌책방들도 속절없이 저물어가고만 있다. 경남의 경우 이제 손으로 다 헤아려볼 수 있을 만큼 얼마 남지 않은 헌책들의 보고. 이들마저 전부 사라져 버리기 전에, 불씨를 되살릴 방법은 정말 없을까. 해답을 좇아 찾은 곳은 영국과 웨일스의 국경에 위치한 인구 1700명 남짓의 작은 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다.
지난 5월 ‘2026 헤이페스티벌’을 찾은 방문객들이 헤이온와이 마을의 헌책방을 둘러보고 있다.
과거 헤이온와이는 소규모 농장들과 작은 농산물 시장에 기대 살아가던 국경 변두리의 소도시였다. 그런데 1961년, 마법이라는 말 외엔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헌책들로부터 시작됐다. 마을 출신의 서。인 리처드 부스(Richard Booth)가 쇠퇴해 가는 자신의 고향 땅에 헌책들을 대거 사 모아 중고 책 사업을 연 게 기.이었다. 리처드 부스가 영국 전역에서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다량의 헌책을 사들이자 자연스레 헌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농촌 마을로 모여들었다.
세월이 지나 부스의 상。 옆으로 30여 개의 헌책방들이 생겨났고, 거리를 찾는 헌책 마니아들은 이곳에서 책들의 축제를 펼치기 시작했다. 귀한 헌책 자료들을 구하고, 책의 저자를 불러 강연을 듣고, 독서에 대한 감상을 광장에 모여 나눴다. 지금은 세계 최대의 책 축제로 자리 잡은 ‘헤이페스티벌(Hay Festival, Hay-on-Wye)’은 그렇게 헌책에 이끌린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문을 열었다.
지난 5월 헤이온와이 마을의 ‘2026 헤이페스티벌’을 찾은 방문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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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개최된 ‘2026 헤이페스티벌’ 현장.
헌책이 어떻게 마을을 살려냈는지, 비밀을 알고자 제39회 헤이페스티벌 현장을 찾았다.
지난 5월 21일부터 31일까지 개최됐던 올해 축제의 첫날,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축제가 열리는 헤이온와이 마을까지 향하는 길은 그리 가깝지 않았다. 런던에서 헤이온와이와 가장 가까운 철도역이 있는 도시 헤리퍼드까지 기차로 약 3시간, 헤리퍼드에서 다시 한번 버스를 타고 굽이진 산길을 따라 한 시간여를 가야 헤이온와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에 딱 6번 운행하는 헤이온와이행 버스 노선에 올라탄 뒤로는 건물 자체를 보기가 드물었다. 숲과 농장으로만 둘러싸인 좁은 길을 한참 달려야 하고, 배차 간격도 만만치 않아 접근성이 쉬운 축제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2층짜리 버스는 헤이페스티벌에 가기 위해 모인 세계 각지의 방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버스에서부터 체감한 축제의 열기는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더 살갗으로 와 닿았다. 축제장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 헤이온와이 마을의 책방과 상。들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헤이페스티벌 프로그램이 열리는 중앙 행사장 출입구 천막 앞은 세계 각지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의 버스가 줄을 이었다. 인구 1700명 남짓의 작은 마을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지난 5월 개최된 ‘2026 헤이페스티벌’ 현장에서 헌책방 ‘OXFAM’ 부스 방문객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지난 5월 헤이온와이 마을에서 열린 ‘2026 헤이페스티벌’.
헤이페스티벌은 헤이온와이 마을 상권 바로 위편의 너른 잔디 광장에서, 수십 개의 천막들로 임시 건물을 세운 채 진행된다. 천막 안에서는 지역의 유명 헌책방이나 영국의 인기 서.들이 기간 한정 매대(팝업스토어)를 열고, 저자 초청 강연이나 문화체험 프로그램 행사를 개최한다. 그 가운데서도 축제 첫날 가장 인파가 붐볐던 천막 중 하나는 영국의 대표적인 자선 단체형 헌책방 ‘Oxfam’의 매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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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축제를 찾아 ‘Oxfam’에서 헌책을 고르고 있던 방문객 A 씨는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여행 중인데, 이곳에서 매년 세계적인 책 축제가 열린다고 해 일정에 추가해 들르게 됐다. 온 김에 헌책들을 살펴보는 중”이라 했다. 같은 천막에서 책장을 둘러보고 있던 줄리아 피어슨(77) 씨는 “가격이 합리적이라 원래도 헌책을 자주 사고, 좋아하는 편이다. 헤이온와이 축제에는 몇 년째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오고 있는데, 이번에는 내가 관심 있는 작가들도 많이 온다고 해서 더 기대된다”고 설렘을 표하기도 했다.
헤이페스티벌 탐방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방문객들이 현지 안내인의 마을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올해 헤이페스티벌에서는 11일 동안 500여 개의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그 가운데는 마을 전체를 걸으며 헤이온와이의 역사를 듣는 하이킹 체험 등 지역 밀착형 행사들도 다수 포함됐다. 헌책방에서 시작된 책 축제는 단순히 책방들만을 살려낸 게 아니라, 외곽 소도시의 문화와 경제를 완전히 새롭게 되살렸다.
헤이페스티벌 영국 프로그램 총괄 디렉터인 헬렌 배그널은 “매년 봄마다 이 축제를 찾는 방문객이 15만 명은 넘는다. 헤이페스티벌이 지역에 불러오는 문화 경제적 영향은 수치로 다 담아낼 수 없다. 축제와 지역 책방들은 서로 상생하며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2026 헤이페스티벌’ 英 프로그램 기획한 헬렌 배그널 총괄 디렉터
“축제 세계적 성공 요인, 헌책방 공동체·비전”
헬렌 배그널 2026 헤이페스티벌 영국 프로그램 총괄 디렉터가 축제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헌책방들은 어떻게 축제의 출발。이 됐나.
△1970년대에 리처드 부스가 영국, 미국, 유럽 전역의 헌책들을 죄다 사들여서, 헤이온와이에 중고 책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리처드 부스는 당시 너무 바빴던 나머지 책을 수집하기만 하고 읽지는 못해, 바로 되팔게 된 거다. 그 탓에 엄청난 양의 중고 책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헤이온와이가 책 판매상과 구매자들, 수집가들, 그리고 헌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헌책 마을이 되고 나자, 마을의 헌책들을 향한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이 결국 1980년대에 축제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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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본 사람들은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고, 강연을 들은 관객들은 또다시 책을 사고 싶어 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헌책들은 그렇게 헤이페스티벌의 시작을 함께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축제장 안에 다수의 헌책방이 입.해 있다. 축제의 중요한 한 축이다.
-헤이페스티벌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궁금하다.
△지금 헤이페스티벌은 봄에 가장 큰 규모로 열고 있고, 겨울에도 조금 더 간략하게 축제를 개최 중이다. 이전에 겨울철 축제가 헤이온와이 마을에 불러온 경제적 효과를 수치화해 본 적이 있는데, 대략 300만 파운드(한화 약 55억 원)의 관광 수익을 불러온 것으로 계산됐다. 봄철 축제는 그 10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축제 기간 이곳을 찾는 15만 명의 방문객들은 마을의 호텔과 카페, 레스토랑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게 지역 경제에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다.
-헤이페스티벌은 현재 다른 여러 도시(콜롬비아, 페루, 멕시코, 미국, 스페인 등)에서도 확장돼 개최되고 있다고 들었다.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축제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세 가지가 핵심인데, 첫째는 약간의 ‘마법’이다. 어떤 말로 딱 정의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헌책을 비롯해 책이라는 존재 자체에 느끼는 설렘이 축제의 핵심 요인이라고 본다. 또 책이 주는 그 설렘을 가지고 어떻게 축제를 성공시킬 수 있을지 정말 잘 아는 사람이 있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마법과 함께 꼭 필요한 또 하나의 요소로 ‘비전’을 꼽겠다. ‘우리가 이것을 반드시 해내서 이 작은 마을을 지도상에서 널리 알리겠다’는 진정한 비전. 마법이 사람들에게 설렘과 흥분을 준다면, 비전은 그것을 실제로 실현 가능하게 만든다. 지금의 헤이페스티벌을 탄생시킨 마지막 핵심 요인은 헌책방들의 공동체(커뮤니티)다. 헤이페스티벌이 열리는 헤이온와이의 헌책방들은 여전히 ‘책의 마을’이라는 동화 같은 꿈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곳 책방 마을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창조된 공간이다. 헌책방들은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역할을 해줬다. 모든 헌책방이 함께 협력했기에 이처럼 경이로운 공간과 축제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큰 규모로 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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