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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새서휘 작성일26-09-22 15:19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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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세미나에 가서 '생략의 재미, 맥락의 발견-방송에서의 호칭 문제'라는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됐다.
상대에게 꼭 들어맞는 호칭을 애써 찾기보다 맥락에 맞는 상황어를 발굴하는 쪽이 더 가치 있다는 것, 그리고 대인관계의 상대성을 일일이 따져 고정된 호칭을 정하기보다 새로운 호칭을 위한 기제(機制)를 궁리하는 편이 더 의미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식당이나 카페에서 쓰는 '여기요' '저기요'다. 상대를 콕 집어 부르는 게 아니라 상황을 일깨우는 방식이다. 해법은 합리적 참신성에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부합이 보인다. 영어·독일어·프랑스어는 모두 '익스큐즈 미'(Excuse Me)의 연장선에 있다. 당신을 부르는 나의 무례를 용서하라는 뜻이니, 부르는 쪽이 오히려 교양과 품격을 얻게 되는 구조다. '실례합니다'로의 확장을 생각해볼 만하다.
이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은 최근 조사로도 확인된다. 국립국어원의 '2024년 국어 사용 실태 어휘 조사'를 보면 공공기관의 20~30대 여성 직원을 부를 때 '여기요(저기요)'가 47.9%로 '선생님'(27.9%), '아가씨'(15.5%)를 제쳤고, 남성 직원을 부를 때도 '여기요'가 50.6%로 가장 높았다.
식당·편의。의 젊은 여성 직원을 부를 때는 '여기요'와 '아가씨'가 각각 36.7%, 32.3%로 팽팽히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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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 나라 사정도 비슷한 결을 보인다. 중국은 종업원을 직접 외쳐 부르는 편이고, 일본은 미안함을 뜻하는 '스미마셍'이나 말끝을 흐리는 '아노(저…)'가 일반적이다.
부르는 행위 자체에 양해와 조심스러움을 얹는 언어 습관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발견되는 셈이다.
호칭 문제는 사실 존대법 전반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전국 14~79세 남녀 3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개선이 필요한 공공언어 국민 설문조사'에서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로 꼽힌 것이 다름 아닌 사물을 높이는 과도한 높임 표현(93.3%)이었다.
'그 제품은 품절이십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처럼, 높임의 선어말어미 '-시-'를 사람이 아닌 사물에 붙이는 화법이다. 고객을 존중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습관이겠으나, 정작 존대의 대상이 사람에서 물건으로 옮겨가 버린 역설이다.
이 조사에서 '되/돼' 표기 혼동(90.2%), '-충' 같은 혐오 표현(87.1%), '장애를 앓다' 같은 차별적 표현(78.7%)도 함께 지적된 걸 보면, 상대를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호칭 하나에 그치지 않고 우리말 전반의 숙제로 번져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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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을 상황어나 평등한 말로 바꾸려는 시도는 직장 안에서도 이어져 왔다. 2000년 CJ그룹이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회장부터 사원까지 모두를 '님'으로 부르는 제도를 도입했고, 2002년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이 대표이사를 포함한 전 임직원의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다.
2006년 SK텔레콤은 직책자를 제외한 전 직원을 '매니저'로, 2010년 제일기획은 사장을 포함한 전체 임직원을 '프로'로 바꿔 불렀다. 최근에는 삼성전자도 팀장·그룹장·임원까지 직급 대신 호칭을 쓰지 않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정비했다. 부장·차장 같은 서열형 호칭이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문제의식이, 방송이나 일상의 호칭 논의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셈이다.
가족 호칭에서도 비슷한 비대칭이 지적돼 왔다. 2016년 국립국어원 조사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 '아가씨'로 높여 부르는 반면, 남편은 아내의 동생을 '처남' '처제'로 부르는 구조를 두고 응답자의 65%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쪽만 높이고 한쪽은 낮추는 오래된 호칭 관행이, 성평등이라는 잣대 앞에서 새삼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명절마다 되풀이되는 호칭 논쟁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정해진 이름표보다 관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이때의 발제와 토론을 모아 나온 책이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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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건 처음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 조선일보의 소프트한 외부 칼럼 코너 '일사일언'을 쓰게 됐다. 앞서 언급한 예전 세미나에서의 원고와 발표가 계기를 만들어 줬다. 그 뒤로도 '여기요' 대신 '실례합니다'를 써보자는 제안은 지면을 바꿔가며 되풀이해온 생각이다.
가장 무례한 부름은 상대를 직접 지칭해 "헤이, 웨이터" 식으로 호명하는 것이고, 가장 교양 있는 쪽은 "바쁜 당신을 부르는 걸 용서해달라"는 뜻의 독일어 인사말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관찰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요'도 좋지만, 내처 '실례합니다'를 써보면 부르는 사람도 불리는 사람도 조금 더 대접받는 느낌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정치와 제도의 민주화를 넘어 일상의 민주화가 절실한 시대다. 그에 걸맞은 언어 혁신이 필요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쇄말적(鎖末的) 일대일 대응의 호칭·지칭에서 벗어나 상황의 메커니즘을 지향하는 게 더 구조적이고 생산적인 노력이 아닐까 싶다.
호칭 하나를 바꾸는 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그 사소함이 쌓여 사물을 높이던 말버릇을 고치고, 회사의 직급을 지우고, 곧 다가올 명절 밥상의 오래된 서열을 다시 묻는 데까지 이어진다. 결국 말의 민주화는 관계의 민주화와 같은 자리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전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여 부르는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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